최초의 그리스(헬라스) 철학들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졌을까요.
세계의 근원 물질
아테네 경제와 사회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계급들(장인과 상인, 기술자, 부유한 농민)의 등장으로 아테네의 귀족정치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평민들의 지지를 업고 정권을 장악한 영웅들이 나타납니다. 이들을 참주라고 하는데, 이들은 처음엔 귀족 세력을 억제하고 평민들의 권한을 늘려 주기도 했지만, 이들 역시 점차 독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오니아지역, 지금의 터키지역이죠. 이 동쪽에서는 이집트와 바빌론으로부터 수학과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아 철학자들의 과학적인 사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자연이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그 근원은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을 던졌는데 탈레스는 그 근원을 물로 보았고, 아낙시만드로스는 물, 불, 공기, 흙이 우주의 구성성분이라고 했습니다. 공기가 모든 요소 중에서 가장 본질적이라고 한 아낙시메네스를 비롯한 이들 모두는 '무엇으로부터 무엇이 나온다, 무엇이 근원이다'와 같은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이들 밀레투스학파는 이 세계, 우주는 물, 불처럼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들의 변화와 상호작용과 근원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한편, 피타고라스는 우주가 '수'로 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주의 수학적 질서를 탐구하는 것이 영혼의 정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죠. 이는 죄를 범한 영혼이 지상으로 추방되었고 이 영혼은 정화를 통해 다시 천상으로 갈 수 있다는 오르페우스교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피타고라스학파의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의 수많은 사물 뒤에는 하나의 단일한 통일체인 로고스가 있는데, 이 로고스는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법칙을 제공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밀레투스학파와 피타고라스학파의 철학자들은 우주에 대한 초자연적이고도 신화적인 설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했으며, 눈에 보이는 세계와 진리의 세계,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논쟁하였습니다.
소피스트('지혜로운 자')의 등장
그런데, 세계와 우주가 무엇으로 되었는지는 결코 알 수 없고 증명할 수도 없어 진정한 세계를 결코 알 수 없다고 한 아테네의 철학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소피스트'라고 불렀습니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한 프로타고라스에서 알 수 있듯이, 소피스트들은 인간의 모든 지식과 가치들은 상대적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의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이익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트라시마코스). 우리 눈앞의 세상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자, 즉 대상 세계가 아니라 개인, 사람에 대해서 탐색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죠.
페르시아전쟁 승리 후부터 펠레폰네소스전쟁 이전까지 아테네는 그리스 세계의 중심이 되었고, 지식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소피스트들은 그리스인들에게 언어와 인문과학, 논증술을 가르쳤습니다. 논증술이 중요한 이유는 민주주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시민들의 권력이 커짐에 따라 아테네 민주주의도 성장하게 되는데, 아테네의 여러 부족에서 각각 추첨을 통해 뽑힌 500인의 대표, 즉 500인 협의회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여러 국가의 행정 문제를 논의했고 민회에서는 안건에 대해 투표하고 최종 결정을 했습니다. 이렇게 발전된 민주정치에서는 효과적인 설득 능력과 논쟁 기술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습니다. 소피스트들은 법정의 연설문이나 논쟁술을 가르쳐 주면서 돈을 벌기도 했는데, 이런 모습이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을 테지요.
너의 영혼을 돌보라, 소크라테스
이런 소피스트들과는 매우 다른 인물이 바로 소크라테스였습니다. 그는 장터를 배회하며 사람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앞선 사상가의 논쟁들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란 질문을 던지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을 강조했으며,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기존의 여러 관점들을 반박하는 방식을 이용했습니다. 이미 나와 있는 답이 왜 잘못된 것인가를 논박하는 이 대화법을 산파술로 부르는데, 이런 문답법으로 지혜를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상대의 논증을 꼼짝 못 하게 만들면서 무지를 자각하게 하는 일이었죠. 그러나 그 목적이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고발자와 죽음을 선고한 재판관들의 말처럼, 젊은이들을 타락하게 하거나 논쟁술을 가르치며 돈을 벌거나 신이나 국가를 모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의 최후 변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지하며 보잘것없다는 것을 아는 것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윤리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사명은 '영혼을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영혼이란 단순히 육체의 그림자도 아니고 종교적인 것도 아닙니다. 삶에 의미를 가져다주고 그 자체로 불멸하는 것으로의 영혼의 뜻이죠. 명확하게 손에 잡히진 않지만, 소크라테스가 지혜와 지식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 끊임없는 반성, 정의와 덕을 중요시했다는 점에서 볼 때, 도덕적으로 좋은 것들, 올바른 것, 인간의 순수한 가치 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각하게 하는 것이 그의 소명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소피스트와 달리 돈과 명예에 관심이 없었죠. 공포정치 시기에 참주들이 선량한 시민을 체포하라고 했을 때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재판에서도 적당히 타협해 사형을 피할 수도 있었고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도 감옥을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최후의 변론에서 청중과 재판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죽음을 피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악함을 피하기는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것은 죽음보다 훨씬 빠릅니다. 지금 저는 굼뜨고 늙어서 더 느린 것에 걸리고 말았지만, 강하고 잽싼 고발자들은 더 빠른 것, 곧 악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제 저는 그대들에게 사형을 선고받고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저들은 진리에 따라 야비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이제 여러분을 캐묻는 사람들은 이제까지보다 더 많아질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그대들이 올바로 살고 있는지를 따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믿으신다면, 여러분은 잘못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럴 수도 없으며, 그것은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손쉬운 방법은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그대들 자신을 최대한 훌륭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이론을 주장하지도, 책을 남기지도 않았지만 가장 용기있고 실천적인 철학자가 아니었을까요. 권력 앞에서 굽히지 않고 죽음 앞에서 의연한, 정말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이었음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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