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인 문제, 줌파라히리
안내문은 그게 일시적인 문제라고 했다. 닷새 동안 오후 여덟 시부터 한 시간 동안 단전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 눈보라에 전선이 망가졌는데, 날이 덜 추운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보수 작업을 한다고 했다. 이 작업은 줄지어 늘어선 벽돌집 가게와 노면전차 정류장에서 걸어오는 거리에 있는 조용한 가로수 길갓집에만 영향을 미쳤다. 쇼바와 슈쿠마는 지난 삼 년 동안 그 동네에 살았다.
일시적 상처
관계에 균열이 생기면 그 균열을 드러내며 무뎌지거나, 드러내지 못해 견디며 살거나 하죠. 어느 것도 행복한 일은 아닐 겁니다. 쇼바와 슈쿠마는 부부입니다. 여섯 달 전 임산부였던 쇼바는 슈쿠마가 학술대회에 간 사이 예정일보다 빨리 진통을 느꼈고 제왕절개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기가 사산됩니다.쇼바는 달라졌습니다. 전엔 손님을 위해 칫솔을 준비해 놓거나 집에 음식과 음식재료가 떨어지지 않게 늘 준비를 해놓는사람이었죠. 그러나 이젠 더는 요리에도 관심이 없으며 종일 소파에 앉아 교정 일에만 몰두합니다. 이제 슈쿠마가 요리를 하지만 그들은 전처럼 식사를 같이하지 않습니다. 각자 음식을 그릇에 담아서 각자 하던 일을 하며 먹죠.전선 보수작업 때문에 며칠동안 정전이 됩니다. 그들은 촛불을 켜고 다시 함께 식사를 하게 되고 전에 한 번도 서로에게 얘기하지 않은 일들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각자의 소소한 비밀을 한 가지씩 얘기하죠. 그러면서 조금씩 다시 가까워지는 듯합니다. 슈쿠마는 그녀와의 대화가 기다려지기까지 합니다.
이런 일시적 감정은 쇼바의 마지막 고백으로 무너집니다. 쇼바는 이미 결별하기로 마음먹고 집을 알아보았고 적당한 집을 계약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슈쿠마는 그녀에게 결코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아기가 죽었을 때 자신은 죽은 아기를 마지막으로 안아보았다고요. 그리고 아기의 붉은 피부와 검은색 머리털, 꼭 오므린 손가락을 보았다고.
잠시 후, 쇼바가 불을 껐고,그들은 어두운 식탁에서 함께 울었습니다.
영원한 상처가 되지 않기를
아기의 죽음 이후 일시적일 거라고 여겼던 슬픔과 그들 사이의 간극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일시적 단절은 일시적으로 이해와 화해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큰 상처는 어떤 사람의 잘못이든 돌이킬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어도,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도, 이미 너무 늦어버릴 때가 있죠. 상처의 힘이 한없이 사람을, 사랑을 약하게 할 만큼 크다는 것이 너무 슬픈 이야기이지만요.
회상과 현재의 달라진 모습들이 길게 묘사된 점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미 식어버린 사랑처럼요. 생명력 없는 일상의 반복, 건조한 대화, 아마 쇼바는 이런 죽음을 거부하고 생명력 있는 사랑을 위해 헤어짐을 결심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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