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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자존심 엘리스먼로 상처에 익숙해진다는 것

by ∝♧ 2020.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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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엘리스먼로

무슨 일이든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러니까, 세상 모든 일이 그에게 불리한 쪽으로만 일어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삼진 아웃으로 모자라 이십진 아웃까지 당한다. 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나아진다. 어린 시절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도-예컨대 2학년 때 바지에 실수를 했다든가-사람들이 무엇하나 잊어버리지 않는 우리 타운 같은 곳(어느 타운이건, 세상의 타운은 다 그렇다)에서 계속 살아간다. 그들은 용케 버티며 자신들이 따뜻하고 활달한 사람임을 보여주고,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한다.

상처의 기억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죠. 이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요. 애써 부인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을 뿐, 나의 깊은 내면에서 아직도 끓고 있는 부당함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상처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여기 상처받은 '나'에 관한 묘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의 결점

오나이다의 아버지는 재력 있는 은행가였습니다. 잘 나가던 사람이 은행의 부실 경영으로 책임을 지고 아주 작은 마을의 은행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하급 은행원 둘만 있는 작은 은행이었고 거리도 먼 곳에 부임했다는 사실이 그에게 적잖이 자존심이 상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들은 자존심을 지키느라 가정부를 내보내지도 않았죠. 그의 딸인 오나이다는 아버지의 직장까지 매일 운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불행해 보이진 않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언청이입니다. 그래서 군 복무에서 면제받기 위해 굳이 농부의 아들이나 농장에 고용된 일꾼이 될 필요도 없었습니다. 나는 백화점에서 장부를 보는 일을 하며 언청이를 꽤 훌륭하게 고쳐서 발음도 사람들이 알아듣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다 잊혀졌다.

'나'는 옛 기억을 어렵게 회상하며 '그때는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라고 잊혀진 듯, 무심하게 자신의 경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안타까운 일은 아니라면서.  


"어머니가 나 때문에 자식을 더 낳기를 두려워했다는 것, 어머니에게 관심을 보이던 남자에게 그렇게 말했다가 그 남자를 놓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이 우리 두 사람 중 누구에게도 안타까운 일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생김새가 달랐다면 사귀었을지 모르는 여자친구를 아쉬워하지도, 또 전쟁터로 떠나며 거들먹거리는 잠깐의 순간이 아쉽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큰 상처를 겪었고 그로 인해 그런 현실에 분노했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 보면요.

 

"민간인을 태운 페리가 침몰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공포와 한편으로는 서늘한 흥분이 뒤섞인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날아가고, 한순간에 나 같은 사람들이나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이나 그들 같은 사람들이나 모두 평등해진다." 

오나이다의 아버지가 죽고, 그녀는 집을 파는 문제에 대해 나에게 상의해옵니다. 그 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고 서로 가까워집니다. 여기서도 이상합니다. 나는 정말 옛 기억들을 모두 잊은 걸까요.

 
"우리는 심지어 화질이 떨어진 옛날 프로까지 보았다. 요즘 나는 이따금 그런 오래된 시리즈물이 새것처럼 선명한 화질로 방송되는 것을 보는데, 그러면 어쩐지 슬퍼져 채널을 돌려버린다."

 

그의 자존심

어느 날 내가 쓰러지고 그녀가 나를 간호해주면서 거의 내 집에 살다시피 합니다. 오나이다는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감정이 있다고 말합니다. 남매처럼 함께 살면서 남매처럼 서로를 잘 보살필 수 있을 거라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고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일 거라고. 나는 이런 얘기를 들으며 기분이 매우 나쁘고 화가 났습니다. 아무도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니. 나는 화가 치밀어 집을 이미 내놓았다고 하며 그럴 수 없다고 말해버렸죠.

생각에도 없던 이사를 해야 하니 집을 보러 갔습니다. 아파트 집을 보러 갔는데 거기서 어떤 사람이 이사 오는 거냐고 말을 걸었습니다. 나는 그가 반평생 길에서 인사를 나누던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 유커게임을 할 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나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오래 살다 보면 많은 문제들이 그냥 해결된다고. 선택된 사람들만 들어가는 모임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어떤 장애를 가지고 살았건 그 시기에 이르면 많은 문제가 상당수 해결된다."

그 후, 오나이다를 다시 친구처럼 만나게 되고, 내 집 뒷마당에서 함께 스컹크 무리를 보게 됩니다. 

 

"그들은 춤을 추듯 움직이지만, 서로의 길을 방해하지 않는다.""나는 그녀가 또 다른 말을 해서 그 순간을 망칠 거로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고 둘 다 그러지 않았으며 그 순간 우린 한없이 즐거웠다." 

 

'나'는 자신의 경험과 순간순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듯합니다. 그러다가도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세월이 지나 모든 게 잊히고 나아진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오나이다와 그녀의 아버지가 상류계급이었고 자신은 보통 사람도 되지 못했던 과거, 어린 시절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이라곤 오로지 그곳에서 버텨내는 것, 그것뿐이었을 '나'에 측은한 감정이 듭니다.

솔직하다 해도 완전히 솔직해질 수 없는 건, 끝까지 지키고 싶은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 때문일 겁니다. 자신을 속이고 서툴지만, 위장을 하면서 살지 않으면 살아낼 수 없는 게 인생이고 상처가 있는 사람의 몸부림일 수도 있겠죠.

이 단편은 한줄한줄 쓸데없는 문장이 없는 것 같아요. 단편소설의 응축성이란 게 이런걸까요. 읽을 수록 거기에 딱 맞는, 꼭 있어야 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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